KBO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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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KBO 신인상은 KBO 리그 해당 시즌에 참가한 신인 선수들 중에서 최고의 활약을 한 신인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2014년까지는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한국야구위원회의 아이덴티티 통합 작업에 따라 2015년부터 본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2. 후보자 선정 및 수상 조건[편집]
최우수 신인이란 해당연도의 선수권대회에서 신인선수로 출장하여 기능 ·정신 양면이 가장 우수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를 말한다. 또한 신인선수란 한국야구위원회 회원구단의 선수로서 다음과 같은 누계 출장 수를 초과하지 않은 자에 한한다. 5년 이내(이하 당해 년도 제외),[1] 투수는 30이닝 이내, 타자는 규정타석의 60타석 이내. 단, '외국 프로야구 기구에 소속되었던 선수는 신인선수에서 제외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KBO 리그 초창기의 경우 실업리그에서 활동했던 선수들에게 신인왕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으나 초대 신인왕인 박종훈이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 상업은행에 몸 담았던 점[2] 을 봤을 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장효조가 신인왕을 받지 못한 것은 이미 실업야구에서 연차가 많이 쌓였고 나이도 30줄이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3. 역대 수상자[편집]
- KBO 리그 원년인 1982년에는 신인왕을 시상하지 않았다.
- 빨간 글씨는 그 선수가 당해 해당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음을 뜻한다.
4. 역대 투표 결과[편집]
5. 논란[편집]
매년 10명씩 뽑는 골든글러브 시상식과 달리 1명만 뽑지만, 기자들의 인기투표의 성질이 뚜렷한 건 마찬가지다. 야구 기자들 외에도 수백 명에 달하는 기자들이 투표하기 때문에 야구를 잘 모르는 기자들이나 세이버메트릭스에 무지한 기자들도 많아 논란거리가 계속 생긴다. 이러다 보니 야구 룰은 알고 있을지조차 의문인 수준의 무지한 표던지기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골든글러브나 신인상 선정에 대한 불만이 축적되고 세이버메트릭스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비판 여론이 많이 늘어난 편이다. 이정후, 강백호 등 타 신인에 비해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여 별 논란이 없는 경우도 많지만 세이버메트릭스는 고사하고 클래식 스탯이라고 하는 선수 성적을[33] 단순히 비교해 우위에 있는 선수한테 표를 주는 기자 정도면 양반이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팀 선수한테 줘버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34] 예를 들어 2020년에는 6타석밖에 나오지 않은 김은성에게 1위표를 던지는 기자도 있었다.
가장 유명한 신인왕 강탈사건은 초대 신인왕이 탄생한 1983년이었다. 삼성 라이온즈의 장효조가 그 피해자였는데 1983년 데뷔 첫 시즌부터 타율 1위에 안타를 117개나 쳐내는 등[35] 기록을 쏟아냈으나, 이미 성인무대에서 어느 정도 활약을 한 상태에서 입단했으므로 신인으로 간주할 수 없다[36] 는 다분히 역차별적인 이유로 신인왕을 OB의 박종훈한테 넘겨줘야 했다.[37][38]
99년 홍성흔, 01년 김태균의 수상은 KBO가 얼마나 근본없는 조직인지 확인가능한 사례로 볼 수있다. 이 해의 신인왕 후보 기준은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이지만, 해당 수상자들은 후보에도 못오를 선수인데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인 99년 정성훈, 01년 박한이를 제치고 신인왕을 수상한다.[39]
2019년 신인왕 정우영 또한 논란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정우영은 역대 프로야구 신인왕 수상자 중 두번째로 나쁜 war를 기록하였다. 같은 투수로는 선발 20 등판의 원태인이 있고, 불펜투수로는 정우영보다 앞서는 전상현이 있다. 133경기를 주전 중견수로 출전하여 2할 후반의 타율을 기록한 이창진도 신인자격이 있었다.
현대 대표적인 세이버메트릭스 스탯은 WAR인데 2019년 WAR은 스탯티즈 기준으로 원태인이 0.85, 이창진이 2.26, 전상현 1.83, 정우영이 0.66으로 이를 기준으로 보면 이창진-전상현-원태인-정우영 순서다.[40] 한 마디로 정우영은 전체 신인 중 6위에 동포지션에도 자기보다 우위인 선수가 3명이나 있었다는 것. 개다가 똑같이 불펜 보직이었던 전상현과 비교하면 전상현은 ERA 3.12 15홀드 WAR 1.83, 정우영은 ERA 3.72 16홀드 WAR 0.66 으로 전상현이 정우영을 상회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득표를 보면 정우영의 표가 이들보다 2~3배 이상 득표를 기록하는 결과가 나왔다.
다만 스탯티즈의 war은 팀 수비에 대한 보정이 이루어지는데 2019년 팀 수비지표가 LG는 1등, KIA는 9등이었기 때문에 정우영과 전상현의 war 차이가 다소 과하게 벌어진 점도 있다. 수비보정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TZ기반의 지표를 사용하는 스탯티즈의 수비지표가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과 더불어 수비지표의 신뢰성이 높다 한들 단기 표본에 수비보정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시선도 많기 때문이다.[41] 또한 정우영은 고졸신인이었고 경쟁자인 전상현은 군대까지 다녀온 프로 3년차 선수, 이창진은 무려 만 28세 선수였다는 점에서 다소간의 차이는 납득이 될만하다. 참고로, 2020년 홍창기는 만27세였고 신인왕 자격이 있었으며 스탯티즈 기준 war* 3.98, war 5.00을 기록하며 war 2.37을 기록한 고졸신인 소형준을 크게 앞섰지만, 소형준이 신인왕을 수상한 것에 대해선 대체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는 소형준이 뛰어난 선수라는 점 영향이 있겠지만 홍창기의 나이가 많았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정우영은 팀의 불펜상황이 좋지 않고 순위경쟁이 치열했던 6월까지 무려 48.1이닝을 던지며 2.23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잘 던졌을때만 가져와서 속칭 '젠가질'을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2019년 정우영이 전상현의 2019년 이닝인 60.1보다도 많은 61이닝까지 소화했을 당시 방어율은 2.95로 전상현보다 낮았다. 이는 정우영을 전상현만큼만 관리해줬어도 훨씬 좋은 성적을 기록했을 것이란 얘기이며 그 이후 순위싸움과 상관없는 경기에서 대량실점하며 방어율이 확 올라가긴 했지만 이를 가지고 실질적인 기여도를 폄하하기엔 무리가 있다. war또한 완벽한 스탯이 아니고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하며 소위'야알못' 기자들 뿐만 아니라 현장 전문가인 해설위원들도 대부분 시즌 막판 정우영의 수상을 예측한 것에는 이러한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42]
2021년도 신인왕 투표에서도 논란이라면 논란이 있었다. 수상자인 이의리는 경쟁자였던 최준용보다 총 득표에서 1표 적은 득표수를 얻었지만 1위표에서 더 많은 표를 받아 신인왕에 오르게 된다. 이의리는 19경기 19선발 94⅔이닝 4승 5패 93탈삼진, ERA 3.61, FIP 4.03, WHIP 1.32, WAR 2.35를 기록한 바 있다. 최준용은 44경기 모두 구원으로 출장하여 47⅓이닝 4승 2패 1세이브 20홀드 45탈삼진, ERA 2.85, FIP 3.97, WHIP 1.20, WAR 1.94를 기록하였다. 비록 시즌 도중 겪은 불의의 부상 때문이었지만 이의리의 출장 기록이 선발 투수로 신인왕을 수상한 선수 중 2003년 이동학 다음으로 적은 이닝이었던 것과 승수가 낮다는 점이 비판측의 이유로 꼽혔다.
하지만 이의리의 기량과 성적 자체가 신인왕을 받지 못할 수준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당시 시즌 페이스를 감안했을 때 만약 부상으로 이탈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많은 경기를 소화하고 경쟁 후보들과 비교 불가한 수준의 준수한 성적으로 논란을 잠재웠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역시 도쿄 올림픽에서의 성적을 투표 결과에 반영했다는 일부 기자들의 어긋난 논지가 이의리가 리그에서 보인 성과를 오히려 갉아먹는 긁어부스럼이 된 것이다. 단순히 이의리의 성적이 최준용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 우위라고는 할 수 없어도 현대 야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WAR에서의 차이 등에 중점을 두고 보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기자들의 주장으로 봐서는 논란거리가 될 일도 없다. 기아는 1985년 이순철, 롯데는 1992년 염종석 선수가 구단 역대의 유일한 신인왕이었기에 두 구단의 신인왕 배출에 이목이 집중되던 터였으므로 표심에서 설득력이 있는 이유가 여느 때보다 더욱 필요했지만, 기자들의 설득력 부족한 논리와 양팀 팬들간의 신경전이 리그 신인왕 투표가 아닌 국가 대표 신인왕을 뽑는 행위가 아니냐는 불필요하고 불미스러운 논란을 부추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6. 구단별 신인왕 배출 현황[편집]
- 왼쪽부터 최다 인원 순서대로 서술.
6.1. 각 구단 마지막 신인왕[편집]
- 왼쪽부터 차례대로 최근 순서대로 서술.
6.2. 신인왕 관련 기록 및 징크스[편집]
- 기록
7. 관련 문서[편집]
[1] 프로 입단 6년차까지의 선수를 뜻한다. 육성선수 출신의 경우 정식 선수로 전환되고 등록된 첫 해가 기준이 되는데, SK 와이번스의 김정빈의 케이스로 인해 밝혀졌다. 당시에는 드래프트에 지명되고도 육성선수 신분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지금보다 더 자주 있었고, 지금도 드래프트에 지명은 되더라도 육성선수 계약으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다른 드래프티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계약금을 지급받는 경우가 보통이다.[2] A B C D E F G 원래 바로 원년 멤버가 될 수 있었으나 1982년 세계 야구 선수권 참가를 위해 자진해서 상업은행으로 갔다. 정작 부상으로 엔트리에 들지 못했지만.[3] 프로 첫 해에는 3루수로 출장하였다.[4] 쌍방울은 1990년에 창단하여 당시 2군에 있었다.[5] 2023년 현재까지 롯데 자이언츠 유일한 신인왕.[6] 본래 상무 야구단 출신이 었으나 1994년까지 상무는 6개월 및 18개월 방위 판정을 받은 선수의 복무가 가능했다. 1995년 병역 제도가 변경되면서 상무는 현역 자원 및 신장과 체중으로 인해 보충역 판정을 받은 선수들만 받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보충역 판정을 받고 군 복무를 뒤로 미루고 있던 1974년생까지의 선수들 상당수가 공익요원 복무를 하게 된다.[7] 다승왕을 먹은 LG 트윈스의 김용수와 공동 1위를 수상했다.[8] 불펜투수의 경우 과거처럼 무리하게 혹사 시키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2000년대 들어서부터는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하는게 정상이며, 이후의 수상한 선수들 중에서도 규정이닝을 넘어선 불펜투수는 없다.[9] 다승&ERA&탈삼진[10] 이 당시 신인선수의 기준이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한 6년차 선수까지였기 때문에 7년차인 최형우가 신인왕을 수상할 수 있었다. 이후 규정이 변경되어 6년차를 마지노선으로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7년차 신인왕은 나올 수 없다.[11] 2006년 2차 8라운드 전체 59번 두산 베어스 지명[12] 2013년 NC 다이노스 송신영, 신재영 - 넥센 히어로즈 박정준, 지석훈, 이창섭.[13] 2007년 임태훈 이후 10년, 타자로 한정하면 2001년 김태균 이후 무려 16년 만에 나온 프로 1년차 신인왕 겸 고졸 1년차 신인왕으로, 1998년 강동우 이후 19년 만에 나온 데뷔시즌 규정타석 3할 신인이다. 구자욱처럼 데뷔 첫해 신인상은 맞으나 2012년 드래프트 지명만 받았을 뿐 1군 데뷔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당해년도 순수 데뷔 신인상 이라는 이름에서만 벗어나는 이유.[14] 이전 기록은 1994년 서용빈의 157개, 고졸로 한정하면 1994년 김재현의 134개.[15] 이전 기록은 1994년 유지현의 109점.[16] 이전 기록은 1994년 김재현의 21개. 대졸신인까지 한정하면 30개의 박재홍에 이어 2위.[17] 박종훈과 함께 2020시즌 국내 투수 최다승인 13승을 기록했다. 고졸 신인이 두 자릿수 승리를 따낸 것도, 국내 최다승 투수에 이름을 올린 것도 2006년 류현진(당시 한화) 이후 처음이다.[18] 이전 기록은 2007년 임태훈의 20개.[19] 6위 김용국(2점)[20] 6위 김정수(23점), 7위 차동철(4점), 8위 한희민(4점)[21] 6위 정명원(38점), 7위 류명선(36점)[22] 6위 박동희(51점)[23] 점수제에서 1인 1표 다득표제로 변경[24] 다른 후보였던 김상진, 최재호, 송지만은 득표에 실패했다.[25] 이 해를 기점으로 KBO 시상식의 진행 시기가 포스트시즌 이전에서 이후로 변경되었다.[26] 박장희와 김상태도 후보에 있었으나 둘 다 득표에 실패했다.[과반미달] A B C [27] 그 외 후보였던 김성배는 득표에 실패했다.[28] 그 외 후보였던 우규민과 이종욱은 득표에 실패했다.[29] 1인 1표 다득표제에서 점수제로 변경[30] 점수제에서 1인 1표 다득표제로 변경[31] 전의산, 김현준, 이재현은 각 1표씩 득표했다.[32] 김민석, 유영찬은 각 1표씩 득표했다.[33] 투수는 승수와 ERA, 탈삼진, 타자는 타율과 홈런, 타점이 대표적이다.[34] 류현진 이후 순수 신인투수로 가장 뛰어난 성적을 달성한 소형준에게 3위표조차 주지 않은 기자가 무려 7명이나 있다는 것은 선수가 아닌 팀을 보고 뽑았다는 것과도 같다.[35] 당시 1시즌 경기는 총 100경기였다.(원년에 80경기, 이후 100경기로 늘어났고 증감을 거쳐 2013년부턴 128경기) 교타자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이 해에는 18개의 홈런을 쳐서 리그 3위를 기록,이는 1991년 쌍방울의 김기태가 27홈런을 기록하기 전까지 신인 좌타자 시즌 최다홈런 기록이었다. 참고로, 1983년 홈런 1위는 이만수(27개), 2위는 김봉연(22개).[36] 오마이뉴스의 김은식에 따르면 '참신성이 없다' 라고...하기야 프로 입단 이전부터 성인 야구무대인 실업 야구에서 4년이나 뛰었으니 충분히 고참급으로 분류될 수 있었다. 입단 당시 나이만 봐도 현재를 기준으로 해도 중참에서 고참으로 넘어가는 단계.[37] 이 이유에도 나름 근거는 있는게, 프로야구가 없던 시절 사실상 전신이라고 봐야하는 한국실업야구에서 충분히 활약을 한 선수를 신인이라고 인정할 수 있느냐는 건데, 종목은 다르지만 한국프로농구에서도 이상민이 실제로 현대전자에 입단한 후 거의 뛰지 않고 바로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하고 프로 2년차부터 현대 다이냇 소속으로 뛰면서 MVP를 수상했음에도 불구, KBL 최우수 신인 투표에선 주희정에게 밀렸던 예가 있다. 어떻게 보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일본리그출신 선수들에게 신인왕 자격을 주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논란이 종종 벌어지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38] 박종훈도 실업야구에서 1년간 뛰었으나 1982년 세계 야구선수권 대회 참가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이므로 기자단은 박종훈을 대졸 신인과 같이 취급했다. 박종훈 이후로는 실업야구 리그 출신 프로야구 선수가 신인왕을 수상한 사례는 없다.[39] 다만 홍성흔과는 다르게 김태균은 후보 기준을 바꿔서라도 신인왕을 줘야 했던건 맞다. 규정타석을 못 채웠음에도 누적 스텟인 WAR에서 리그 야수들중 15위, 3루수중 1위인 4.33을 기록했고 홈런은 20개나 때려냈다. 비율스텟은 타석 수가 부족해 표본이 적지 않겠냐 싶겠지만 나름 289타석을 소화해 wRC+는 무려 176.6, 타출장은 각각 .335, .436, .649를 기록해 OPS가 무려 1.085나 되어 적은 표본에도 불구하고 분명 신인왕에 걸맞는 성적을 기록하였었다.[40] 언론에 거의 비춰지지 않았지만 신인왕 자격이 있었던 선수를 더 쓰면 최원준 1.29, 고영창 1.21도 있다. 두 선수 다 불펜이다.[41] 이는 스탯티즈가 벤치마킹 했다고 볼 수 있는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제공하는 bWAR이 지적받는 부분이기도 하다[42]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144&aid=0000633533 [두산] OB 베어스 2명, 두산 베어스 5명[LG] MBC 청룡 2명, LG 트윈스 4명[삼성] 삼성 라이온즈 6명[현대] 태평양 돌핀스 1명, 현대 유니콘스 5명. 2007시즌 이후 팀 해체.[한화] 빙그레 이글스 1명, 한화 이글스 3명[키움] 넥센 히어로즈 3명[KIA] 해태 타이거즈 1명, KIA 타이거즈 1명[NC] NC 다이노스 2명[kt] kt wiz 2명[롯데] 롯데 자이언츠 1명[쌍방울] 쌍방울 레이더스 1명. 1999시즌 이후 팀 해체[SSG] SK 와이번스 1명[43] 1989년 11월 18일 출생. 당시 만 27세[44] 유효표의 과반수를 득표하지 못해 2차 투표를 진행했고, 2차 투표 유효표 78표 중 50표를 받아 최종 신인왕 선정.[45] 2002~2004년(3년). 현대는 2003년부터 해체 당시까지 연고지 문제로 인해 1차 지명권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한 기록이다.[46] 1980년대부터 시작해서 2020년대까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 연대마다 신인왕을 배출했다.[47] 80년대 2명, 90년대 1명, 00년대 2명, 10년대 1명, 20년대 1명.[48] 1985년 이순철 이후로 2021년 이의리까지 36년이 걸렸다.[49] 롯데 자이언츠가 2029시즌까지 신인왕을 배출하지 못할 경우 이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50] KIA, LG, 키움, 한화, NC[51] 두산, 삼성, 롯데, SSG, 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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